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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나가 이야기하는/패션 이야기

오늘의 디자이너,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라 불리는 "이브 생 로랑"

by 루피나블 202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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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은 다들 유명해서 한 번 쯤 들어보셨죠??

 

입생로랑 디자이너 (출처 : 나무위키)

 

출처: 위키백과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생로랑 브랜드의 창시자이며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는 분이죠.ㅎㅎ

 

어린시절(출처: 문화뉴스)


성장과정

 

1936년 8월 1일, 프랑스 알제리의 오랑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초반까지는 어머니와 누이들을 위한 드레스를 디자인하기도 하며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성장했습니다.

 


디올과 생로랑

 

1953년, 생 로랑은  ‘젊은 패션 디자이너 공모전’에 3개의 스케치를 제출하여 3등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생 로랑은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당시 프랑스 보그의 편집장 미셸 브루노프를 만나게 됩니다.

미셸 브루노프는 생 로랑이 가지고 온 스케치에 깊은 감명을 받게되고 패션디자이너를 제안하게 되요.

생 로랑은 결국 그의 충고를 따르기로 하고 파리 의상 조합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몇달 만에 그만 둡니다.

 

1954년, 다시 국제 울 사무국 주관 콘테스트에 참가해

당시 독일 출신의 젊은 유학생이었던 칼 라커펠트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합니다.

크리스찬 디올과 입 생로랑

생 로랑은 우승 직후 몇 장의 스케치들을 미셸 브루노프에게 가져다주었는데,

브루노프는 크리스찬 디올이 그날 아침 자신에게 보여준 스케치와 생 로랑의 스케치 사이에

밀접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곧바로 생 로랑을 디올과 만나게 했으며 디올은 그 자리에서 즉시 생 로랑을 고용하기에 이른다.

1957년 8월, 디올은 생 로랑의 어머니를 직접 만나 ‘나의 뒤를 이을 디자이너로 생 로랑을 선택했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 해 10월, 디올이 이탈리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때 생 로랑과 그의 어머니는 충격을 금치못하게 된다.

 

트라페즈 라인


크리스챤 디올이 사망하자 생 로랑은 21세의 젊은 나이에 디올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맡게 된다.

1958년 봄 컬렉션에서 디올의 '뉴룩'의 소프트한 버전인 "트라페즈 드레스"라는 창작물을 발표하게되고,

이 드레스는 생 로랑을 국제적인 스타덤에 올라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어요.

 

 

이 컬렉션에 포함된 다른 드레스들은 거의 모두 어깨가 좁고 아래쪽에서 부드럽게 펄럭이는 형태의 디자인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이름을 '생 로랑'으로 줄였다.

왜냐하면 국제 언론들이 자신의 이름을 철자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브생로랑 설립

 

이브생로랑의 르스모킹(출처: 위키백과, 구글)

르 스모킹 룩: 여성을 위한 턱시도

사파리드레스(출처 : 구글이미지)
비트닉 컬렉션( 출처: 문화뉴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입 생 로랑은

비트닉룩, 남녀를 위한 사파리 재킷, 꽉 끼는 바지, 길다란 허벅지 높이 부츠,

그리고 1966년, 가장 유명한 여성용 턱시도 슈트인 르 스모킹(Le Smoking)과 같은 패션 트렌드를 대중화시켰다.

 

몬드리안 드레스( 출처: 구글이미지)

 

또한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받아 제작해 1965년에 발표한 몬드리안 드레스는 특히나 유명하다.

이처럼 생 로랑은 60년대와 70년대에 패션 산업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출처: 나무위키

이브 생 로랑은 미니스커트, 시스루 룩등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면서 노출도가 높은 여성 패션을 선보인 브랜드입니다.

 

또한 여성의 패션을 재해석하는 것도 특징이었습니다.

최초의 여성 정장 수트, 최초의 여성 턱시도, 최초의 여성 트렌치 코트등을 보여주었답니다.

 


 

현대에서 입 생로랑에 대한 평가를 보면

 

예술과 패션을 콜라보한 디자이너

 

앤디워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팝아트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고

조각가 클로드 라란느와 콜라보하여 우아한 롱 드레스에 청동으로 된 조각 작품을 달기도 했으며

피카소 오마주 컬렉션, 조르주 브라크등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컬렉션에 도입했었죠.

 

여성을 해방시킨 디자이너

 

1968년 1월 가슴이 다 비춰 보이는 시수루 룩을 선보였는데 이는 여성해방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답니다.

당시 파격적인 시스루룩은 미래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티프가 되기도 했답니다.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디자인하여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답니다.

 

입 생 로랑의 마직막 패션쇼

이브 생 로랑은 2008년 뇌종양으로 71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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